런던의 교구 서기들은 1500년대 후반부터 매주 매장과 세례 건수를 기록했고, 1603년부터는 이를 표준화했다. 그 목적은 하나의 특정한 운영상 이유였다. 즉 역병의 심각도를 추적하여 시 당국과 주민들이 유행이 악화되어 극장을 폐쇄하고, 모임을 제한하거나, 도시를 떠날 때를 알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70년 동안 『사망표(Bills of Mortality)』는 오로지 그 관점에서만 읽혔다. 주간 사망자 수가 증가하면 역병이 늘어난 것일 뿐, 그 이상은 아니었다.

과학적 훈련도, 제도적 지위도 없는 양품상이자 직물 상인이었던 존 그랜트는 사망표가 만들어진 역병 감시 목적과 아무 이해관계가 없었다. 그는 대신 같은 70년 분량의 원시 교구 기록을, 이를 수집한 누구도 의도한 적 없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데이터셋으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즉 사망률이 성별 사이에서, 도시와 시골 사이에서, 원인별로, 그리고 연령별로 어떻게 달라지는가였다.

사망 시 연령조차 기재되지 않은 기록을 바탕으로, 그랜트는 비율 기반 추정 기법을 사용하여 최초의 생명표를 재구성했고, 그런 방식으로 직접 측정된 적이 없는 인구에 대해 특정 연령까지 생존할 확률을 보여주었다. 그는 1662년 『사망표에 기초한 자연적·정치적 관찰(Natural and Political Observations Made upon the Bills of Mortality)』에서 자신의 발견을 출판했으며, 왕립학회에 직접 50부를 전달했다.

그랜트는 역병 기록에서 결코 기재된 적 없는 연령 패턴을 캐내어, 비율 추정을 사용해 다른 목적으로 수집된 데이터로부터 최초의 생명표를 만들었다.

기록은 이미 존재했으므로, 분석에는 시간만 들었다.

비율 추정이 빠져 있던 연령 차원을 채웠다.

다른 누구도 데이터에 다른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외부인의 관점이 그를 의도된 관점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한 가지 목적으로 수집된 운영 데이터는 종종 다른 통찰을 숨기고 있다. 원래 질문에 이해관계가 없는 외부인이 그 데이터를 캐내어 새로운 분야를 열 수 있다.

그랜트의 책은 사실상 인구학과 인구통계학을 학문 분야로 확립했고, 다섯 판을 거듭했다. 왕립학회는 오로지 그 업적만을 근거로 그를 회원으로 선출했다. 이는 통상 회원이 상인보다는 신사와 학자 중에서 선출되던 관례에서 주목할 만한 이탈이었다. 찰스 2세 국왕은 학회에 그와 같은 상인을 더 찾을 수 있다면 받아들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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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 John Graunt Wikipedia · en.wikipedia.org
  2. John Graunt at 400: Fighting disease with numbers Significance (Wiley, Royal Statistical Society) · rss.onlinelibrary.wiley.com
  3. History of Statistics 1: The Bills of Mortality, and the Beginning of Statistics Vermont Mathematics Initiative (American Statistical Association) · higherlogicdownload.s3.amazona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