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식물 육종가는 새로운 장미, 사과, 복숭아를 얻기 위해 십 년을 교배와 선발에 쏟을 수 있었지만, 그 후에는 식물 자체 외에는 팔 것이 없었다. 한 개체만 사들인 사람은 누구든 그것을 무한정 접붙일 수 있었고, 육종 비용을 결코 부담하지 않아도 되는 가격으로 그 자손을 육종가와 경쟁하여 팔 수 있었다. 하원 기록 보관소에 따르면, 재배자들은 '완성하는 데 흔히 수년이 걸리는 자신들의 산물이 법적 보호 장치 없이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 복제되어 판매된다고 오랫동안 불평해 왔다.'

특허 제도는 도움이 되지 않았는데, 그것은 사람이 만든 제조물을 중심으로 구축되어 있었고 식물은 육종가가 단지 발견하거나 길들인 자연의 산물로 취급되었기 때문이다. 이 공백은 인디애나주 하원의원이자 농업위원회에서 여덟 번 임기를 지낸 프레드 퍼넬이 가장 기억에 남게 말했다: '쥐덫이나 재즈 곡을 발명한 사람은 보호를 받고 특허 제도가 주는 특권을 누려야 하는데, 평생을 새로운 식물을 개발하는 데 바친 루서 버뱅크 같은 사람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묘목 업계는 소송을 벌이는 대신 의회를 움직여 무성 번식에만 적용되는 별도의 권리를 만들게 했고, 농가의 반대를 피하기 위해 종자와 곡물은 제외했다.

기존 특허법은 제조물만을 대상으로 하고 식물은 대상으로 하지 않았으므로, 정의를 확장하려는 소송은 느리고 불확실했다.

별도의 권리는 실제 자산인 무성 번식, 즉 묘목 업계가 품종을 번식시키는 방식에 맞게 작성될 수 있었다.

종자와 주요 작물을 제외함으로써 농업 로비가 법안을 막으려는 유인을 없애 통과가 가능해졌다.

범위가 좁았기 때문에 새 권리는 소수의 강력한 이익을 위협했고, 그래서 신속히 통과되어 선례를 세웠다.

당신의 창작물이 기존의 법적 범주에 맞지 않는다면, 당신의 자산에 맞춘 새로운 범주를 만드는 것을 고려하고, 반대를 피하기 위해 그것을 좁게 유지하라.

하원은 1930년 5월 13일 식물 특허법을 통과시켰고, 이듬해 첫 식물 특허는 덩굴장미에 주어졌다. 이 법은 살아 있는 식물 품종이 사유 재산이 될 수 있다는 원칙을 확립했으며, 그것이 그은 경계는 뒤집히기보다 이후의 법에 의해 넓혀졌다: 1970년 식물 품종 보호법은 종자로 번식하는 작물에까지 미쳤고, 같은 모델에 기반한 식물 육종가의 권리는 UPOV 협약을 통해 국제적으로 퍼졌다. 1930년 법이 살아남기 위해 필요로 했던 주요 작물 제외는 바로 이후 투쟁이 옮겨 간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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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 Plant Patent Act of 1930 — Historical Highlights US House of Representatives: History, Art & Archives · history.house.gov
  2. Garden of Plant Patent Facts University of Maine Libraries · libguides.library.umaine.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