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중반까지 말라카는 구자라트 무슬림 상인, 남인도와 벵골 상인, 동남아시아 상인, 그리고 중국과 동아시아 상인들을 하나의 항구로 끌어들인 주요 교차로 항구가 되었으며, 이 국제적 공동체의 인구는 10만 명을 넘었다고 전해진다. 이 집단들은 서로 간에도, 항구를 운영하던 말레이 궁정과도 본질적으로 공통된 언어, 법 전통, 종교 관행, 상업 관습을 공유하지 않았고, 그렇게 많은 대외 무역이 오가는 항구에서 화물, 가격, 행동을 둘러싼 분쟁은 불가피했다.

단일 무역 당국은 아무리 선의라 해도 근본적으로 다른 법적·문화적 기대를 가로질러 모든 분쟁을 재판해야 했고, 공유된 준거점이 없었으므로 어느 쪽으로 판결이 나든 불공정하다고 인식될 구조적 조건을 갖추었으며, 하나의 관청이 모든 공동체의 규범을 동시에 숙달해야 했으므로 느리기도 했다.

상인 블록마다 한 명씩 항만 관리관 네 명을 임명하여, 분쟁이 멀리 떨어진 중앙 관청이 아니라 해당 공동체의 규범을 아는 내부자에 의해 해결되도록 했다.

각 항만 관리관은 자신이 섬기는 공동체 출신이었으므로 이미 그 공동체의 언어와 관습을 알고 있었다.

상인들은 내부자의 판결을 신뢰했고, 그에 따라 결정이 공정하고 정당하게 느껴졌다.

각 항만 관리관은 한 공동체의 규범에만 전문성을 갖추면 되었으므로 분쟁이 더 빨리 해결되었다.

이 체제는 말라카가 성장하면서 확장되었고, 더 많은 무역을 끌어들이며 주요 중계 무역항이 되었다.

양립할 수 없는 규범을 가진 집단을 상대할 때는 권한을 분산시켜, 하나의 중앙 중재자가 아니라 각 집단에 내부 출신의 대표자를 두어야 한다.

이 체제는 분쟁과 관습 문제가 모든 공동체를 가로질러 중재하려는 하나의 중앙 관청이 아니라, 이미 그 규범에 능통한 사람에 의해 각 상인 공동체 내부에서 지역적으로 처리되도록 했으며, 말라카는 1400년경 건국된 후 수십 년 안에 인도양 무역 세계에서 가장 번화한 중계 무역항으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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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 When the World Came to Southeast Asia: Malacca and the Global Economy Education About Asia (Association for Asian Studies) · educationaboutasia.org
  2. 2.3: The Malacca Sultanate OpenStax World History (via LibreTexts) · human.libretexts.org
  3. Shabunder Encyclopaedia Britannica · britannic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