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책
1970년대 미국의 주택 개보수 시장은 동네 철물점과 소규모 지역 체인점들이 주도하고 있었다. 재고는 한정적이었고 가격은 높게 매겨졌으며 조언의 질도 들쭉날쭉했다. 개보수 센터 체인인 핸디 댄의 최고경영자 버니 마커스와 그 재무 책임자 아서 블랭크는 더 나은 형태가 어떨지 수년간 고민해 왔다. 1978년 4월, 기업 내 권력 다툼으로 두 사람 모두 핸디 댄에서 해고되었다.
실직하고 50세에 가까워진 마커스는 훗날 자신이 "DIY족을 위한 원스톱 숍"이라고 표현한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회사를 세웠다. 투자은행가 켄 랭곤이 투자자들을 모았고, 머천다이징 전문가 팻 패라가 합류했으며, 계획은 명확했다. 전통적인 철물점보다 규모가 크고 직원 교육이 더 잘 된 체인, 즉 배관공과 전기기사로 일해 본 사람들이 집주인에게 그 일을 하는 방법을 직접 보여주는 매장이었다.
첫 두 매장은 1979년 6월 22일 애틀랜타 대도시권에서 JCPenney의 트레저 아일랜드 하이퍼마켓이었던 임대 공간에 문을 열었다. 고속도로변의 대형 매장으로, 이 사업 형태에 딱 맞는 구조였다. 마커스와 블랭크는 상품을 높이 쌓아 올리고 크게 할인된 가격에 팔았으며, 소매점이 아니라 도매상의 창고 같은 규모의 건물에서 고객이 직접 물건을 고르게 했다.
이 사업 형태는 빠르게 확장되었다. 1981년 나스닥에 상장했고, 1984년까지 매장 19개와 2억 5,600만 달러가 넘는 매출을 기록했으며, 1989년에는 홈디포가 로우스를 제치고 미국 최대 주택 개보수 소매업체가 되었다. 현재는 매장 2,300개 이상, 가치 약 4,000억 달러 규모의 사업으로, 이 분야에서 동급 규모로는 단연 최대다.
이룬 성과
창고를 일반에 개방하고, 기술자 출신 직원을 배치했다
성공한 이유
베이비붐 세대의 주택 재고와 새로운 주택 소유자 세대가 수백만 명의 DIY 고객을 만들어냈지만, 소규모 철물점은 그 수요를 감당할 재고도 교육 능력도 갖추지 못했다.
창고 규모로 판매하면서 가격에서 모든 동네 철물점을 앞질렀고, 따라서 할인은 마진이 아니라 판매량으로 자체 충당되었다.
기술자 출신 직원이 대형 매장에 신뢰를 더했다. 무료 조언이라는 상품 특성이 계약업자에게 가려던 발길을 매장 통로로 돌려놓았다.
창업자들이 해고된 덕분에 구 방식을 옹호할 유인이 사라졌다. 잃을 기존 사업이 없었고, 증명할 것은 모든 것이었다.
창고는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하나의 사업 형태다. 원래 그곳에서 쇼핑할 생각이 없던 사람들에게 문을 열고, 그 일을 아는 사람들을 배치하면, 할인은 스스로 고객을 키우는 학교가 된다.
그 후
홈디포의 창고형 대형 매장은 전 세계 주택 개보수 소매업의 표준이 되었고, 로우스를 비롯한 경쟁업체들은 살아남기 위해 이 형태를 따라야 했다. 회사는 전자상거래 시대에도 매장을 물류 거점으로 연결하며 이 모델을 유지했다. 한 철물점 체인에서 해고된 마커스와 블랭크는 결국 옛 고용주가 채택하지 않았던 사업 형태로 미국 소매업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 중 하나를 일궈냈다.
근거 확인하기
출처
- The Home Depot (history: 1979 first stores, expansion, Lowe's) Wikipedia · en.wikipedia.org
- Bernie Marcus, The Home Depot co-founder and billionaire philanthropist, dies at 95 The Durango Herald (Associated Press) · durangoherald.com ·
- Bernard Marcus, cofounder of The Home Depot and billionaire Republican megadonor, has died CNN Business (via Yahoo Finance) · sg.finance.yahoo.com ·
- Bernard Marcus (career, Handy Dan firing, Home Depot founding) Wikipedia · en.wikipedi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