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이집트항공 181편 납치 사건 이후 Vox와의 인터뷰에서, Wired의 기고 편집자이자 《The Skies Belong to Us》(2013)의 저자인 브렌던 코너는 자신이 "항공기 납치의 황금기"라고 부르는 시기를 설명했다. 1961년 5월부터 1972년 말까지 미국 영공에서 159건의 항공기 납치가 있었고, 대부분은 1968년에서 1972년 사이에 일어났으며, 때로는 일주일에 한 건, 혹은 하루에 여러 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공항 보안은 사실상 없었고, 소지품을 수색받고 금속 탐지기를 통과하는 일은 1973년에야 시작되었다.

코너는 이 전염병을 요구가 점점 격화된 세 시기로 나눈다. 1969년경까지 납치범들은 일부가 사회주의 낙원으로 이상화하던 쿠바로 가기를 원했다. 그다음, 라파엘레 미니키엘로라는 해병이 항공사를 설득해 로스앤젤레스에서 로마까지 비행기를 타고 갔던 일 이후, 납치범들은 어떤 목적지든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1970년부터는 수십만 달러나 금괴를 요구하는 갈취가 시작되었다.

코너에 따르면, 그 모든 과정에서 항공사의 방침은 전적으로 요구에 따르는 것이었다. 비행기의 안전, 승객의 안전을 지키고 돈은 나중에 되찾는 것이었다. 항공사들은 고객들이 금속 탐지기를 공중 납치 가능성보다 더 꺼릴 것이라고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가 터무니없다고 부르는 한 가지 제안된 해결책은 사우스플로리다에 가짜 하바나 공항을 지어 납치된 비행기들이 그곳에 착륙하게 하는 것이었다.

코너가 회고하기에 상황을 바꾼 것은 1972년 11월 서던항공 49편 납치 사건으로, 세 남자가 테네시주 오크리지 국립연구소의 원자로에 비행기를 충돌시키겠다고 위협했다. 얼마 후인 1973년 1월 5일부터 FAA는 승객에 대한 보편적 신체 검색을 시행했다. 모든 사람이 금속 탐지기를 통과하고 가방을 수색받았으며, 처음에는 수작업으로 이루어졌다. 신문사들은 첫날 충돌을 예상하는 기자들을 보냈지만, 전염병에 지쳐 있던 대중은 상당한 지연에도 불구하고 이를 환영했다.

10년간의 전적인 요구 수용은 항공기 납치를 작동하는 서비스로 만들었고, 탑승 시 모든 승객을 검색하는 것은 하나의 병목 지점 조치로 그 이득을 없앴다

전적인 요구 수용은 스스로를 광고할 만큼 정확히 잘 작동했다. 성공한 모든 요구는 다음 납치범에게 그 서비스가 신뢰할 만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항공사들은 보안 검색 줄을 더 큰 상업적 위험으로 평가했기 때문에, 업계는 10년 넘게 검색에 저항했다.

요구는 망명에서 어디든, 그리고 몸값으로 격화되었고, 각 시기마다 요구 수용의 비용을 높였다.

1972년 11월의 원자로 위협은 꼬리 위험을 부인할 수 없게 만들었고, 기존 방침을 보호해 온 교착 상태를 깨뜨렸다.

위협이 단일 병목 지점을 악용할 때는 사건이 아니라 병목 지점을 규제하라. 공격자 한 명 한 명을 달래는 것은 전염병을 11년 동안 지속시켰다.

보편적 검색은 1973년 1월 5일에 시작되었고, 인터뷰의 틀이 지적하듯이 항공기 납치의 황금기는 끝났으며, 검색은 비행의 영구적인 요소가 되었다. 코너는 2016년 3월 이집트항공 편이 키프로스로 우회되었고 납치범이 체포되고 승객들이 무사히 석방된 사건이 복고적으로 읽혔다고 언급한다. 이는 항공기 납치가 대규모 비극이 아니라 불편으로 끝나던 시대로의 회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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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 The US once had more than 130 hijackings in 4 years. Here's why they finally stopped. Vox · vox.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