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책
1930년대 후반까지 드비어스는 이미 세계 원석 다이아몬드 공급의 대부분을 통제하고 있었지만, 공급 통제만으로는 판매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대공황이 사치 소비를 짓밟았고, 다이아몬드는 주로 부유층이 사는 사치품으로 여겨졌다. 미국 약혼 반지 중 다이아몬드가 들어간 것은 약 10%에 불과했고, 진주와 유색 보석도 그에 못지않게 흔했다. 시장에 나오는 원석의 흐름을 제한하는 것은 수요 측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평범한 제품 광고에 더 많은 돈을 쓰는 뻔한 수단은 고객이 이미 그 카테고리를 원하고 있으며 단지 특정 브랜드 쪽으로 살짝 밀어주기만 하면 된다고 전제한다. 드비어스는 아직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상태였다. 1938년 드비어스는 광고 대행사 N.W. 에이어를 고용했는데, 그 임무는 달랐다. 경쟁사의 다이아몬드 대신 드비어스의 다이아몬드를 팔라는 것이 아니라, 다이아몬드 없는 약혼은 어딘가 불완전하다고 미국 대중이 믿게 만드는 것이었다.
W. 에이어는 제품의 특징이 아니라 문화 공학을 중심으로 캠페인을 구축했다. 할리우드 영화에 다이아몬드를 구혼자가 청혼의 순간에 건네는 물건으로 배치하고, 살바도르 달리와 피카소 같은 이들이 그린 '위대한 예술가들' 시리즈를 통해 다이아몬드를 세련됨과 연결하며, 무언의 가격 규칙(한 달 월급을 쓰라는 것으로, 나중에 상향 조정됨)을 설정해 구매자에게 얼마를 써야 할지에 대한 막연한 감각 대신 구체적이고 사회적으로 강제되는 기준을 제공했다.
이룬 성과
의무를 만들어냈다. 영화 속 청혼 장면에 다이아몬드를 배치하고, 지출 기준을 설정하며, '다이아몬드는 영원히(A Diamond Is Forever)'를 만들어내 재판매를 억제함으로써 사치를 의식으로 만들었다.
희소성은 사람들이 그 제품을 원할 때만 통한다. 드비어스는 그 욕구를 만들어내야 했다.
영화 속 배치와 예술은 다이아몬드를 로맨스와 세련됨에 연결해 동경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한 달 월급 규칙은 구체적이고 사회적으로 강제되는 지출 기준을 제공했다.
'다이아몬드는 영원히'는 재판매를 억제해 이차 시장을 억눌렀다.
만들어진 의무는 희소성이 아니라 문화적 수용과 함께 확장되었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지 않는 재화의 공급을 통제할 때, 수요가 정체되면 희소성은 실패한다. 구매가 필요하다고 느껴지게 만드는 의무를 만들어내라.
그 후
1951년까지 보석상들은 에이어에게 '다이아몬드 약혼 반지가 없으면 약혼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다이아몬드 약혼 반지 채택률은 캠페인 이전 미국 약혼의 대략 10%에서 세기말 무렵 약 80%로 올라갔고, 드비어스의 연간 다이아몬드 매출은 1939년 약 2,300만 달러에서 1979년까지 21억 달러 이상으로 성장했다.
근거 확인하기
출처
- A tagline is forever The Marketing Society · marketingsociety.com
- How De Beers Changed the Diamond Market with One Simple Tagline Sotheby's · sotheby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