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10월 미국의 정찰이 쿠바에 소련 핵미사일이 설치되고 있음을 확인했을 때, 케네디의 군사 고문들이 선호한 대응은 소련의 추가 선박이 섬에 도착하는 것을 막기 위한 해상 봉쇄였다. 그러나 봉쇄는 국제법상 특정하고 확립된 의미를 지녔다. 즉 그것은 전쟁 행위였고, 법적으로는 이미 서로 전쟁 상태에 있는 교전국 사이에서만 허용되었으며, 쿠바에 대해 봉쇄를 선언하는 것은 소련에게 어디서든 미국의 어떤 행동이든 이미 시작된 전쟁으로 취급할 법적 명분을 넘겨줄 위험이 있었다.

국무부 법률고문실은 10월 19일 집행위원회 회의에서 다른 명칭을 제안했다. 바로 '검역(quarantine)'이라고 부르자는 것이었다. 국제법적 용례에서 검역은 방어적 조치로, 군사적 봉쇄보다는 공중보건상의 통제선에 가까웠으며, 전쟁 상태를 전제하지 않았고, 일방적 무력 행위로만 정당화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조약에 의해 승인될 여지도 있었다.

봉쇄를 '검역'으로 명명하고 미주기구(OAS)의 지지를 얻어냄으로써, 같은 선박을 막는 같은 함정들이 전쟁 행위가 아닌 방어적 지역 행동이 되었다.

국제법은 물리적 행위가 아니라 범주를 규율하므로, 명칭을 바꾸는 것이 법적 결과를 바꾸었다.

검역이라는 명칭은 방어적이고 비교전적 범주에 부합하여 전쟁 행위를 촉발하는 요건을 피했다.

리우 조약에 따른 미주기구(OAS)의 지지는 새 명칭에 다자적 정당성을 부여했다.

같은 함정과 임무가 계속되었으므로 작전 목표는 변하지 않았다.

어떤 행위가 하나의 명칭 아래에서 막혀 있을 때, 새로운 권한을 찾기 전에 같은 행위가 다른 허용된 범주에 부합하는지 확인하라.

검역은 한 발의 총성도 없이 6일간 유지되어, 위기를 끝낸 소련의 미사일 철수를 협상할 여지를 마련했다. 검역과 봉쇄의 구분은 국가가 선언된 봉쇄의 법적 결과를 촉발하지 않으면서 강제적 해상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방식에 관한 국제법의 표준적 준거점이 되었으며, 이후 해상 차단과 제재 집행을 둘러싼 분쟁에서도 인용되었다.

근거 확인하기

출처

  1. The Cuban Missile Crisis, October 1962 US Department of State, Office of the Historian · history.state.gov
  2. Defusing the Cuban Missile Crisis: Naval Quarantine as Strategic De-escalation Center for International Maritime Security · cimsec.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