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5년, 보스턴의 유복한 가문 출신 청년 프레더릭 튜더는 냉장 기술이 없고 얼음이 상품으로 알려지지 않았던 열대 카리브해 지역에 얼어붙은 뉴잉글랜드 연못에서 잘라낸 얼음을 실어 날라 큰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다. 보스턴 상인 사회는 이 아이디어를 농담으로 여겼다. 모두가 적도 근처의 더위 속에서 몇 주씩 항해하는 동안 얼음이 가득 실린 화물칸은 그냥 다 녹아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무도 그곳에 얼음을 팔아 보려 하지 않았고, 단단한 얼음 덩어리를 몇 주 동안 바다에서 온전하게 유지하기 위한 운송이나 포장 방법도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1806년 마르티니크로 보낸 튜더의 첫 선적은 회의론자들의 말이 절반은 맞았음을 보여 주었다. 항해를 견디고 남은 얼음은 팔렸지만, 녹아 없어진 양이 너무 많아 사업은 손해를 보았고, 그 후 몇 년간 손실이 거듭되면서 그는 1812년에는 채무자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그는 처음에 포장 단열재로 건초를 시도했지만 결과가 일정하지 않았다. 어떤 선적은 쓸 만한 얼음으로 도착했고, 어떤 선적은 물이 되어 도착했으며, 특정 항해가 어떤 결과를 낼지 미리 알 방법이 없었다.

건초 대신 제재소에서 공짜로 나오는 폐기물인 톱밥으로 바꾸자 얼음이 훨씬 안정적으로 단열되었고, 손실 위험이 큰 도박이 예측 가능한 거래로 바뀌었다.

톱밥은 건초보다 단열 효과가 좋아 녹는 손실을 예측 가능하게 줄였다.

톱밥은 공짜였기 때문에 이 해결책에는 비용이 들지 않았고 수익성이 개선되었다.

안정적인 보존이 가능해지면서 캘커타 같은 먼 시장으로 규모를 확장할 수 있었다.

손실을 예측할 수 있게 되자 튜더는 선적을 계획하고 사업을 키울 수 있었다.

제품이 운송 중에 변질된다면, 더 정교한 운송 방법을 찾기보다 다른 산업에서 나오는 값싼 부산물 중 보존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을 찾아라.

1833년까지 튜더가 보낸 얼음 선적은 보스턴에서 캘커타까지 4개월, 1만 6천 마일에 걸친 항해를 거쳐 화물 대부분이 온전한 상태로 도착했고, 그 후 15년 동안 캘커타 무역만으로 약 22만 달러의 이익을 올렸다. 1850년대에 이르러 튜더 얼음 회사는 카리브해, 미국 남부, 남아시아 전역의 항구로 연간 약 10만 톤의 얼음을 운송하고 있었으며, 1812년 채무로 감옥에 갇혔던 튜더는 1864년 미국의 초기 자수성가 백만장자 중 한 사람으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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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 "The Ice King": Business History Case Study on Frederic Tudor Harvard Business School · hbs.edu
  2. Frederic Tudor — Ice King Business History Review, Harvard University · cambridg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