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화된 국가가 원거리로 명령을 보내고 보고를 받아야 했던 이래로, 육로에서 메시지가 이동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는 좋은 도로 위의 말과 기수의 속도였다. 이는 로마 도로 시대 이래로 사실상 변함없이 유지된 한계였다. 1790년대 초, 혁명기 프랑스는 여러 국경에서 동시에 전쟁을 치르고 있었고, 파리의 정부는 기수가 왕복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빠르게 전선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야 했으며 명령을 되돌려 보내야 했다.

메시지를 더 빨리 보내는 명백한 방법은 전령을 더 빨리 움직이는 것이었다. 더 나은 도로, 새 말을 배치한 중계소, 병렬로 달리는 더 많은 파발꾼 등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동일한 물리적 제약에 여전히 걸렸다. 메시지는 그것을 운반하는 물체가 물리적으로 지면을 이동할 수 있는 속도만큼만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고, 아무리 잘 중계된 말이라도 그 한계를 크게 앞지를 수는 없었다.

클로드 샤프는 파리와 릴 사이에 약 10~25킬로미터 간격으로 탑을 이은 체계를 세웠다. 각 탑에는 다음 탑에서 망원경으로 볼 수 있는 회전식 신호 팔 기구가 설치되었다. 한 탑의 조작원이 팔을 부호화된 위치로 설정하면, 이웃 탑의 조작원이 망원경으로 그것을 읽고 즉시 자기 탑에 같은 위치를 재현하여 신호를 다음으로 중계했다. 메시지는 물리적으로 전혀 이동할 필요가 없었다. 다만 어떤 운송 수단의 속도가 아니라 시각의 속도로, 탑에서 탑으로 보이고 다시 신호될 필요가 있었을 뿐이다.

망원경 사거리 안에 탑들을 이어 세우고, 각 탑이 부호화된 신호를 눈으로 중계하게 함으로써 메시지는 물리적 운송이 아니라 지각의 속도로 이동했다.

각 탑 구간은 몇 초밖에 걸리지 않았으므로 총 시간은 거리가 아니라 구간들의 합이었다.

가시선 중계는 더 빠른 파발꾼이 아니라 탑을 추가함으로써 확장되었다.

조작원들은 신호를 즉시 재현하여 각 연결 고리를 거의 즉각적으로 만들었다.

이 체계는 물리적 운송을 완전히 피함으로써 말 속도의 한계를 우회했다.

속도가 물리적 운송에 의해 제한될 때는 물체를 움직이지 않고 정보를 전달할 방법을 찾아라.

약 220킬로미터에 걸쳐 약 15개의 탑으로 이루어진 파리-릴 노선은 짧은 부호화 메시지를 한 시간 이내에 중계할 수 있었고, 말과 기수로 하루 이상 걸리던 여정을 몇 분으로 압축했다. 프랑스는 이 체계를 스트라스부르와 다른 도시들로 확장했으며, 최전성기에는 수백 킬로미터를 포괄하여 프랑스 주요 도시 대부분을 연결했고, 1850년경 전기 전신이 이를 대체할 때까지 수십 년 동안 정부와 군사용으로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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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 The Optical Telegraph: Faster than a Messenger on Horseback HistoryofInformation.com (Jeremy Norman) · historyofinformation.com
  2. Modèle : Télégraphe optique système Chappe Musée des Arts et Métiers, Cnam · arts-et-metier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