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책
1982년,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의 엔지니어 세 명 — 로드 캐니언, 짐 해리스, 빌 머토 — 은 IBM PC를 기반으로 한 휴대용 컴퓨터를 만들기 위해 Compaq을 설립했다. 부품은 쉬웠다. IBM은 누구나 살 수 있는 기성품 인텔 칩으로 PC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걸림돌은 기계를 하나로 묶어주는 펌웨어인 BIOS였고, 그것은 IBM의 저작권이 있는 코드였다. Compaq의 창업자들은 자신들의 기계가 '거의 호환되는' 수준이 아니라 모든 IBM 프로그램을 정확히 실행하게 만들기로 결정했다. 로터스 1-2-3와 기업용 소프트웨어 진열대야말로 사람들이 애초에 IBM PC를 산 이유였기 때문이다.
그 목표에 도달하는 데는 약 100만 달러와 법적으로 규율된 엔지니어링의 여러 달이 걸렸다. BIOS 작성을 금지당한 '더티' 팀은 IBM의 BIOS를 블랙박스 방식으로 특성화했다. 가능한 모든 입력을 넣고 출력을 기록하는 방식이었다. IBM의 코드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15명의 선임 프로그래머로 구성된 '클린' 팀은 종이에 적힌 동작에 맞춰 새로운 BIOS를 작성했다. 이 분리는 증언 준비처럼 반복 훈련되었다. Compaq 엔지니어 한 명은 카메라식 질문을 받도록 훈련받았다. "IBM 장비를 디스어셈블, 디컴파일 또는 어떤 형태로든 역설계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습니까? 아뇨."
Compaq Portable은 1983년 3월에 출시되었다. 두 개의 플로피 드라이브를 갖춘 시스템 가격은 3,590달러였고, 무게는 28파운드의 들고 다니는 기계였으며, 100퍼센트 IBM 호환성이 판매 포인트의 전부였다. 첫해에 5만 3,000대가 팔렸고 1억 1,1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는데, 이는 당시 미국 기업 첫해 매출로는 기록이었다. IBM은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다. 소송할 대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Compaq이 이끈 곳을 클론 제조사들이 따랐고, 'IBM PC 호환'은 누구의 것도 아닌 컴퓨터 표준이 되었다.
이룬 성과
코드가 아니라 동작을 복제하라
성공한 이유
기업 구매자들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 호환성을 샀다. IBM 프로그램을 동일하게 실행하는 기계라면 무엇이든 더 낮은 가격으로 IBM 자체의 수요를 흡수할 수 있었다.
클린룸 분리는 저작권 문제를 경계 문제로 바꿨다. IBM이 보호한 것은 코드이지 동작이 아니었고, 동작은 탐침으로 학습할 수 있었다.
기성품 인텔 부품 덕분에 엔지니어링 노력 전체를 단 하나의 독점 부품, 즉 100만 달러짜리 펌웨어 재작성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합법성은 마케팅이었다. '100퍼센트 IBM 호환'은 코드를 복사한 경쟁 클론 제조사들이 안전하게 내세울 수 없는 주장이었고, Compaq은 그것을 박스에 찍어 넣었다.
법이 표준을 잠글 때, 자물쇠를 부수지 말라. 인터페이스를 특성화하고, 그 뒤에서 재구축하라. 그러면 기존 사업자의 설치 기반이 당신의 시장이 된다.
그 후
Compaq은 2년 차에 3억 2,900만 달러, 3년 차에 5억 390만 달러를 보고했다. IBM은 1987년 독점적인 마이크로 채널 버스로 반격했고, 아홉 개의 클론 제조사가 개방형 EISA 버스로 응수했다. 이제 '호환' 표준은 IBM을 제외한 모두가 공개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되었다. Compaq은 호환성 우선 전략을 유지했고, 1980년대 후반에는 PC 부문에서 IBM 자체를 앞질렀으며, 2002년 휴렛팩커드가 회사를 인수하기 전에 세계 최대 PC 제조사가 되었다. 그 클린룸은 이후 모든 동작 호환 산업의 템플릿이 되었다.
근거 확인하기
출처
- Triumph of the Nerds: The Transcripts, Part II PBS · pbs.org
- Compaq Portable — with a 2007 first-hand account by Compaq programmer Paul Dixon OldComputers.net · oldcomputer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