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책
남북전쟁 후 텍사스에는 동부 도시에서 몇 배의 값을 받을 수 있는 롱혼 소가 넘쳐났다. 그러나 소떼가 닿을 만큼 가까운 철도 종점이 없었고, 야생 소떼를 1,000마일이나 이동시킬 조직적인 방법도 없었다. 1867년 조지프 G. 매코이는 캔자스주 애빌린의 캔자스퍼시픽 철도에 소 수송 집하장을 세워 이 문제에 답했다. 텍사스에서 온 소떼가 도착해 머물다가 동부행 열차에 곧바로 실릴 수 있는 곳이었다.
소떼가 따라간 경로는 치점 트레일이 되었다. 오늘날 그 경로는 확실하지 않으며, 상인 제시 치점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이 길은 샌안토니오 남쪽에서 오클라호마를 거쳐 집하장까지 이어졌다. 1867년부터 1871년까지 다섯 시즌 동안 약 150만 마리의 소가 북쪽 애빌린으로 몰려왔고, 이로써 거친 소몰이꾼들의 길이 그 세기의 위대한 가축 공급망 중 하나로 바뀌었다.
1871년 이후 경쟁하는 캔자스의 철도 종점들이 생겨나면서 이 트레일의 중요성은 떨어졌고, 1880년대에 샌타페이 철도가 콜드웰에 닿으면서 다시 살아났다가, 철도가 소떼 쪽으로 지선을 뻗으면서 마침내 사라졌다. 집하장이 준 교훈은 이미 받아들여져 있었다. 철도가 소에게로 가면, 소가 철도까지 걸어갈 이유는 사라진다.
이룬 것
집하장을 세우면 소떼가 찾아온다
통한 이유
혁신은 트레일이 아니라 집하장이었다. 살아 있는 롱혼을 동부의 쇠고기로 바꾸려면 표준화된 환승 지점 하나가 필요했다.
애빌린의 동부 철도 연결 덕분에 가치는 발굽이 아니라 일정표를 따라 이동했다. 가격 발견은 트레일에서 집하장으로 옮겨갔다.
매코이는 양쪽 모두에게 동시에 확실성을 주었다. 소몰이꾼은 구매자를 얻었고, 철도는 물량을 얻었으며, 집하장은 그 환승을 맡았다.
단일 선적 지점은 자체 가축 우리와 인력을 유지할 만큼 충분한 물량을 한곳에 모았다. 즉 인터페이스가 스스로 비용을 벌어들였다.
시장은 공급에서가 아니라 인터페이스에서 실패한다. 표준화된 환승 지점, 즉 집하장이든 터미널이든 거래소든 그것을 세우는 자가 다른 모든 이가 창출하는 가치에 대한 통행료를 거둔다.
그 후
1871년 이후 경쟁하는 캔자스의 철도 종점들이 이 무역을 흡수했고, 1880년대의 부흥은 샌타페이 철도를 따라 콜드웰까지 이어졌다. 지선이 철도를 소떼 쪽으로 끌고 가면서 긴 소몰이는 마침내 사라졌다. 애빌린으로 이어진 기간 동안 이 트레일은 약 150만 마리를 이동시켰다. 그리고 공급이 수요를 만나는 곳에 인터페이스를 세우는 이 패턴은 이후 가축 터미널과 상품 거래소의 전형이 되었다.
근거 확인하기
출처
- Abilene, Kansas Wikipedia · en.wikipedia.org
- Joseph G. McCoy Wikipedia · en.wikipedia.org
- Chisholm Trail Handbook of Texas (Texas State Historical Association) · tshaonlin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