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말에 발명된 트랜지스터는 진공관을 대체하여 전자제품을 더 작고 훨씬 더 신뢰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러나 복잡성은 벽에 부딪혔다. 인쇄회로기판 위에 납땜으로 연결된 부품으로는 약 1만 개의 트랜지스터가 한계였고, 반면 새로 떠오르는 컴퓨터 산업은 훨씬 더 많은 것을 필요로 했다. 킬비에게 2000년 노벨상을 수여한 스웨덴 왕립 과학원은 납땜으로 연결된 트랜지스터의 수가 제한 요인이 되었다고 지적했다.

잭 킬비는 1958년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에 합류했다. 노벨 재단이 정리한 그의 강연 요약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1958년 여름의 그의 노트에는 모든 부품이 동일한 재료로 만들어진 집적회로의 최초 도해가 담겨 있다. 즉 트랜지스터, 저항기, 축전기가 따로 배선되는 대신 하나의 반도체 몸체에서 직접 형성되었다. 그는 1959년 2월 6일 '소형화된 전자 회로'라는 특허를 출원했고, 미국 특허청은 1964년 6월 23일 이를 제3,138,743호로 등록했다.

페어차일드에서 독립적으로 연구하던 로버트 노이스는 실제 제조로 이어진 버전을 개발했다. 반도체로는 실리콘, 절연체로는 이산화규소, 도체로는 알루미늄을 사용한 방식이었다. 노벨 재단은 킬비가 먼저 출원했고, 노이스는 출원 당시 그 연구를 알고 있었으며, 두 사람 모두 칩의 발명자로 간주된다고 밝히고 있다.

이 개념은 1960년 무렵 업계에 받아들여졌고 응용은 빠르게 뒤따랐다. 킬비 자신이 공동 발명한 휴대용 계산기는 최초의 용례 중 하나로 1964년 시장에 나왔다. 이후 부품 수는 무어의 법칙으로 알려지게 된 일정에 따라 증가하여, 가격은 대체로 변하지 않은 채 수백만 개의 부품을 담은 칩에 이르렀다.

모든 부품을 하나의 반도체로, 한 덩어리로 만들기

병목은 트랜지스터가 아니라 그 연결이었다. 개별 부품 사이의 모든 납땜 접합은 비용이자 고장 지점이었으므로, 시스템은 납땜이 멈추는 곳에서 성장을 멈췄다.

저항기와 축전기를 트랜지스터와 동일한 반도체로 형성한다는 것은 회로를 별개의 조각들로 조립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공정으로 하나의 몸체로 제작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한 덩어리 회로는 일괄 생산에 적합하다. 더 많이 만들려면 점점 더 많은 접합을 손으로 조립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제작 주기를 반복하면 된다.

이 아이디어는 킬비의 실험실을 넘어 일반화되었다. 노이스의 실리콘·산화물·알루미늄 버전이 실용적인 제조 경로가 되었고, 이것이 두 사람 모두에게 공이 돌아가는 이유다.

모든 접합이 고장 지점이라면, 해결책은 더 나은 배선이 아니라 배선할 부품을 줄이는 것이다. 킬비는 회로를 하나의 재료로 만든 하나의 대상으로 재정의했고, 한계는 사라졌다.

업계는 1960년 무렵 집적회로를 받아들였고, 휴대용 계산기는 그 첫 제품 중 하나로 1964년 등장했다. 부품 수는 이후 무어의 법칙이 된 것에 따라 꾸준히 늘어나, 가격은 대체로 변하지 않은 채 수백만 개의 개별 부품을 담은 칩에 이르렀다. 노이스의 실리콘과 산화물 방식이 제조 표준이 되었고, 2000년 스웨덴 왕립 과학원은 '집적회로 발명에 기여한 공로'로 킬비에게 노벨 물리학상의 절반을 수여했다. 킬비는 경력 동안 약 60건의 특허를 쌓았다.

근거 확인하기

출처

  1. Miniaturized electronic circuits — US Patent 3,138,743 FreePatentsOnline (USPTO record) · freepatentsonline.com ·
  2. Press release: The Nobel Prize in Physics 2000 The Nobel Foundation · nobelprize.org ·
  3. Information for the Public: The Nobel Prize in Physics 2000 The Nobel Foundation · nobelprize.org ·